아버지 나눔 이야기를 떠올리면 거창한 말보다 몇 가지 오래된 풍경이 먼저 생각나요. 떠나는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던 모습, 마루 위 고구마 한 광주리, 그리고 어려운 이웃 아이에게서 사주시던 빵 바구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제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버릇’도 그 풍경 속에서 배운 것이었어요.
저는 무언가 생기면 혼자 먹기보다 먼저 누구와 나눌지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옥상에서 채소가 넉넉하게 자라면 누구 집에 가져다줄까 생각하고, 음식을 만들어도 조금 넉넉하게 하게 됩니다.
생전에 시어머니께서는 저를 보고 종종 “너는 손이 참 크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그저 제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그 손버릇보다 먼저 자리 잡은 것이 있었더라고요.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버릇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뿌리를 따라가 보니 아버지가 계셨어요.

※ AI로 생성해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첫 번째 마음버릇,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마음
제 기억 속 아버지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두루 살피시던 분이었어요.
마을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날 때면 우리 집에 들러 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특히 떠나는 분이 계시면 아버지는 그냥 보내지 않으셨어요.
조용히 봉투 하나를 손에 쥐여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는 길에 뭐라도 사 드시고 가십시오.”

※ AI로 생성해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어린 저는 그 모습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늘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안에는 오고 가는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를 주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과 헤어질 때 한 번 더 챙기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아요.
두 번째 마음버릇, 배고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우리 집 대문은 늘 열려 있었어요.
길가에 있던 집이라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루에는 종종 찐 고구마가 담긴 광주리가 놓여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은 주인이 있든 없든 대문 안으로 들어와 고구마 한두 개를 집어 들고 다시 길을 갔습니다.
누가 몇 개를 가져가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멀리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배고플까 봐 먹을 것을 내놓으셨던 겁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간식거리가 흔하지 않았어요.
집까지 걸어가는 길도 멀었고요.
마루 위에서 집어 든 따뜻한 고구마 하나가 어떤 아이에게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든든한 간식이 되었을 겁니다.
저는 그때 ‘나눔’이라는 말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먹을 것이 있으면 필요한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내어놓는 풍경을 보며 자랐습니다.
지금 옥상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누구에게 좀 가져다줄까?”부터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그때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어요.
세 번째 마음버릇, 도움을 주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

※ AI로 생성해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또 하나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빵 바구니예요.
형편이 어려웠던 이웃집 아이가 정기적으로 빵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가 가져오는 빵을 매번 사주셨어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우리 집에서 빵을 자주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도움을 준다고 드러내놓고 무언가를 건네는 대신, 그 아이가 가져온 빵을 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주는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린 것이 아니었을까.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아이는 성장해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맡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의 연세가 많이 드셨을 무렵에는 직접 우리 집을 찾아와 예전 일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참 묘했어요.
아버지는 아마 자신이 했던 일을 오래 기억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도움을 받았던 사람의 마음에는 그 일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나눔은 보고 배우는 것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아버지에게 나눔에 대한 긴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기억도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제 생활 속에는 아버지와 닮은 모습이 조금씩 남아 있습니다.
옥상에서 채소가 많이 열리면 누구에게 나눠줄지부터 생각하고,
음식을 하면 조금 넉넉하게 만들고,
누군가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 빈손으로 보내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말로 가르치기보다 사는 모습으로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친절하거나 이타적인 행동을 목격하면 다른 사람도 비슷한 친사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반복해서 보았던 부모의 행동이 한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와닿았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거창한 교육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상이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 나눔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그때는 마루 위에 놓인 고구마일 뿐이었고, 누군가 들고 온 빵 한 바구니였어요.
떠나는 선생님의 손에 쥐여준 봉투도 그저 익숙하게 보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세 장면에는 같은 마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배가 고플까 한 번 더 살피고,
먼 길을 갈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누군가를 도울 때는 그 사람의 자존심까지 헤아리는 마음이었어요.
나눔은 꼭 많이 가진 사람이 큰 것을 내놓는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따뜻한 고구마 하나를 내놓는 일도 나눔이고,
빵 한 바구니를 기꺼이 사주는 것도 나눔이고,
떠나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는 것도 나눔이겠지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마음버릇
이제는 시어머니께서 왜 저를 보고 “손이 크다”고 하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손이 먼저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먼저 나가고 손이 그 뒤를 따라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열린 대문과 마루 위의 고구마 광주리, 빵 바구니를 받아 들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동안 조금씩 제 안에 자리 잡았겠지요.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재산이나 물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보면 한 번 더 살피게 만드는 이 작은 마음버릇 하나를 남겨주셨으니까요.
오늘도 옥상에서 무언가 넉넉하게 수확하는 날이면 저는 아마 가장 먼저 생각할 겁니다.
“이건 누구에게 나눠주면 좋을까.”
그 순간마다 어린 시절 마루 위에 놓여 있던 고구마 광주리도 함께 떠오를 것 같아요.
Q&A
Q. 아버지에게서 가장 크게 배운 나눔은 무엇이었나요?
많이 주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을 먼저 살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떠나는 사람, 배고픈 아이,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Q. 고구마 광주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구에게 몇 개를 주겠다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아이가 와서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도록 늘 열어두었던 풍경이기 때문이에요. 어린 시절 제가 처음 경험한 생활 속 나눔이었습니다.
Q. 빵을 사주신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움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아이가 가지고 온 빵을 사주는 방식으로 도우셨다는 점이에요. 세월이 흐른 뒤에는 상대의 마음과 자존심까지 생각한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지금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습관이 남아 있나요?
옥상에서 채소나 과일을 수확하면 누구와 나눌지 먼저 생각하게 돼요. 예전에는 단순히 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린 시절 보고 자란 모습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나눔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열린 대문과 마루 위 고구마 한 광주리 같은 ‘일상의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참고자료
Greater Good Science Center, How Kindness Spreads in a Community
다른 사람의 친절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목격하는 것이 또 다른 친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을 소개합니다.